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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7세 돈용교위 용양위부호군 휘 훈 유록 敦勇校尉 龍陽衛副護軍 諱壎 遺錄

새도방 2015. 1. 29. 10:52
                松澗先生文集卷之一       
七代諱壎字子和善武才托名別侍衛竟未試壽護
軍晩事産業家甚富創建宗家五十與間歲辛丑  
人民飢饉蓬頭菜面往來盈路公設釜鼎架板於前 
路作粥排鉢飢民往來者皆取食之向家再拜而去
者不知幾千萬人至如婚喪勿論親疎匍匐救之弟  
堪早逝有子濟孤而無依公率養一家無異己出作  
家舍備田土以與之使不至貧乏娶宣城金洪之女  
生二男長演次漢一女高胤元葬于家南西向之原
噫壬辰之亂吾門無一人被害者是乃祖積善蔭德 
之賜可不欽敬而鑑戒哉往年松齋公爲安東府使  
病重招公敎曰士大夫家皆享四代又尊不遷之位
而吾門則松安君神主己埋置今不可追作可倉祖 
   本朝原從也於子孫有德吾遞歸時設族會通  
議以是祖爲不遷矣今病劇未行死不瞑目君爲宗
長體余臨死之言議定不遷以遂願卒于府其後一
遵其言定不遷事曾聞之於先考矣癸亥庭檜丁父 
憂大祥臨迫退陶先生命招曰曾祖神主曾欲陪來
而汝家連有喪患未決今不可仍享親盡之家察訪  
兄主陪來己定汝悉此意庭檜告以松齋公及門中 
之議先生曰松齋公未及攷禮惟以情理議恐難遵 
從之先生所敎如前退過數日先生又送人招庭檜
曰畫思夜度未得其宣攷諸家禮李繼善問答極當
以此處之如何卽出示其問答曰代盡神主遷于墓  
所宗孫請族人一歲一大祭云云先生曰可倉亦墓 
所也近日間未及造成一間祠宇否若如是處之不 
是仍存其廟周村亦不遠兩勢似爲便當吾兄年迫 
七十吾亦將七十吾兄弟俱歿則神主還歸墓所往  
來頻頻亦似未安汝有建廟之勢吾當助之庭檜卽  
告門中旬日之間立祠于可倉齋舍後幾畢先生又 
招庭檜曰廟宇幾成乎昨樹谷族會之日議及此事
或言今則如是爲之至後世竟置陋地不祀不埋則
莫如初不如是處也其言似是更思之門中己定之
議余從禮文一朝論罷心有未安揆之以報本追遠  
之義寧失於厚一如門中之議仍享宗家其下高祖
遞遷以正士大夫祭四代之義新造廟宇亦不虛棄
搜理洞墓所春秋望祭于可倉謹按佳邱墓所失傳
故合設而望祭于此其規己成自今造二位版而空 
藏于其廟祭時書紙牓付版設祭庭檜禫祭時
先生親錄遞遷及改題節目命送終姪憑且送位版 
紙筆墨乙丑秋夕送子弟合祭于可倉樓上奉安位 
版于廟高祖神主亦遵先生命遞遷于最長房五寸
族長李希孟家乙未庭檜遞橫城還家則希孟氏夫  
妻以病俱歿子孫失所神主僅免兵火不勝悲感通 
議門中奉來合祭祠廟
曾孫 庭檜 謹識
    
7세 諱는 훈壎이시고, 字는 子和이시며 武才가 뛰어나셨다.  
옛날에는 군적에 등록된 뒤에라야 부거赴擧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別侍衛에 등록하고 여러 차례 초시에 합격했으나, 마침내는 登科하지 못했다.
壽職으로 護軍이 되셨고, 만년에는 산업에 힘쓰서 집안 살림이 매우 넉넉하여  
宗家 50여 칸을 창건하셨다. 
辛丑年(성종12, 1481)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서 헝클어진 머리와    
부황이 난 얼굴들이 길에 가득차는 형편이었다.
그 때 公께서 가마솥을 걸고 앞길에 시렁을 메어 놓고,  
죽을 쑤어 시렁에 죽사발을 얻어 놓으니, 오가는 굶주인 백성들이 모두  
이것을 먹고는 公의 집을 향하여 절하고 가는 사람들이 몇 천만인인지 몰랐다고 한다.  
혼인이나 장례에는 친소를 막론하고 힘써 도와 주었다.
아우이신 감堪께서 의탁할 곳이 없으므로,  
公께서는 일가를 거느려서 기르시기를 당신의 자녀나 다름이 없었다. 
집을 짓고 전토를 마련하시어 주시고 가난을 면하도록 하였다.
영천榮川(지금의 영주)에 거주하던 선성김씨宣城金氏 홍洪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2남 1녀를 낳으시고, 종가의 남쪽 서향 언덕에 장사 지냈다.
아! 임진왜란 때에 우리 집안에는 한 사람도 피해를 입거나  욕을 당한 이가 없었으니, 
이는 우리 할아버님께서 적선하시고 음덕을 쌓으신 여덕이니,  
공경하고 받드신 한편 경계하는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왕년에 송재공松齋公께서 안동부사가 되시어 병환이 위중하실 때에  
公을 부르시어 말씀하시길,
【사대부 집에서는 모두 4대를 봉사하고 또 불천위不遷位를 받드는데,  
우리 집에는 松安君 신주는 이미 조매했으니, 다시 조주할 수는 없고  
가창可倉 조부님께서는 本朝의 原從功臣 이시고, 자손에게 음덕을 끼쳤으니,                  
내가 체임될 때에 족회를 열어 의논하여 할아버님을 불천위不遷位로 모시려 하였으나,
지금 병이 깊어 실행하지 못했으니,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
君은 宗長으로서 내가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말을 잊지 말고  
불천위不遷位로 모실것을 의논하여 내 뜻을 이루도록 하라.】고 말씀하시고  
관에서 돌아가시니, 그 뒤 그 말씀을 따라 불천위不遷位를 정했음을 先考께서 들은 바이다.
癸亥年에 정회庭檜가 아버님 상고를 당하여 대상이 임박할 무렵에  
퇴계선생께서 부르시기에 가 뵈오니,
【가창可倉 증조부 신주를 모셔 오고자 하였으나 너와 집에 喪患이 잇따라 결정치 못했더니,
지금 進盡한 집에서 봉사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察訪 형님께서 모셔 올 것을 이미 결정했으니,
너는 이 뜻을 알고 모든 일을 조치하라.】고 하시기에 
정회庭檜가 송재공松齋公과 문중의 결정한 일을 고했더니 先生께서 
【송재공松齋公께서는 예서를 미쳐 상고하지 못하시고  
오직 정리情理로 결정한 일이니 준행遵行하기가 어렵다.】고
재삼 말씀하시기에 감히 다시 아뢰지 못하고 물러나와,  
西澗 伊溪 門長께 아뢰었더니, 모두 말씀하시기를 
【문중에서 송재공松齋公의 발의에 따라 결정한 것인데 지금 이 말을 들으니,  
불만스러움을 이길 수 없다.】고 하시며,  
사흘이 지난 뒤에 문장들께서 溪上에 가실 때에 정회庭檜도 따라 갔더니
선생께서 하시는 말씀은 전과 같으셨다.
문장들께서는 재삼 의견을  말씀드리고 물러왔다.
수일이 지난 뒤에 선생께서 사람을 보내어 정회庭檜를 부르셔서
【가창可倉 조부 신위는 몹시 어려운 처지여서 주야로 생각했으나 마땅히 도리가 없다. 
禮文을 상고하니, 家禮에 李繼善이 문답이 타당한 둣하니  
이것을 상고하여 처리함이 어떻겠는가?】하시면서 그것을 보여 주셨다.
거기에는【대진한 신주는 묘소로 옮겨서 증손이 族人을 청해서 한번 제사지낸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선생께서【가창可倉 제사도 묘소인 것이니 근일간에 한 칸 사당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이같이 처리한다면 사당에 그대로 모시지도 않고  
주촌 문중에서는 멀리 모셔 보내지도 않으니, 두 가지가 편당便當한 것 같다.
그리고 우리 형님께서도 70을 바라보시고, 나도 장차 70이 되니, 
우리 형제가 다 죽으면 도로 가창可倉 묘소로 돌아가야하니, 
번번히 왕래하는 것도 또한 미안하니 네가 묘우를 세울 형세가 있으면 나도 돕겠다.】 
고 하시기에 정회庭檜가 문중에 고하여 한 열흘 동안에 가창재사 뒷편에 사당을 세웠다.
거의 끝날 무렵에 선생께서 또 정회庭檜를 불러 말씀하시길
【사당 일은 거의 끝났는가? 어제 수곡樹谷 族會에서 이 일에 대하여 논의 했는데 
어떤이는 지금은 그럴듯한 처사나 후세에 이르러서 누지陋地에 모셔 놓고  
제사도 받들지 않고, 조매도 않는다면 처음부터 이같이 처리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하니 
그 말도 그럴듯하여 다시 생각하니, 문중에서 이미 정한 결정을 내가 예문에만 따라서  
일조에 논파하는 것도 마음에 미안한 일이다.
보본추원報本追遠의 뜻을 생각해도 오히려 후하지 못하니,
문중의 논의대로 종가에 봉양하고 그 이하 位 高祖는 체천遞遷토록 하라.
사대부는 4대를 봉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가창에 새로 지은 사당은 비워 둘 수 없으니,  
수리동搜理洞 묘소는 春秋로 가창제사 때 망제望祭를 지내게 되어 있으니,
지금부터 양대의 위판位版을 만들어서 주면에는 쓰지 말고 사당에 모셨다가
春秋 함제할 때에 지방을 쓰서 위판에 붙혀서 제사 지내도록 하라.】고 하셨다.
정회庭檜가 담제禫祭 때에 선생께서 친히 체천遞遷과 개제改題의 절차를 기록하셔서
조카이신 빙憑을 보내시어 參祭케 하시고, 또 위판과 지필묵을 보내 오셨다.  
을축년 추석에 자제를 보내시어 가창에서 합제하고 위판을 사당에 봉안하고  
그 지필묵을 간수하여 매년 그 禮에 따랐고, 고조부의 신주는 선생의 命을 따라  
최장방最長房인 5寸 이희맹李希孟 댁으로 체천遞遷 했다.
을미년에 정회가 횡성橫城에서 체임되어 집에 돌아오니,  
희맹씨希孟氏 내외분은 병으로 모두 돌아가시고,
자손은 거처를 알지 못하고, 신주는 겨우 병화는 면했으나,  
적막한 오막살이에 의지할 곳이 없으니,  
슬픈 감회를 견디지 못하여 통의通議하여 봉안하여 와서 사당에 합제하니 
일은 비록 미안하나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 정의에서였다.
자손들은 이 뜻을 익히 알기 바라며 고조 이상은 최장방最長房에 체천遞遷하는 것이니라.
증손 정회 삼가 지음

 

 

 

 

 

 

 

 

출처 : 진성이씨 우포파
글쓴이 : 이후림(우포22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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