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야기들

그리운 고향집

새도방 2009. 7. 22. 17:47
그리운 고향집


이런 집과 물건 사진을 보면 고향집 생각이 난다.
 
고향 떠나온 뒤로 한 때도 정겨운 고향집 잊은 적 없다.
 
 
 
 
 
 
 
 
정지문-정제문 열고 행랑채 앞에 이르면...
 
고향에 온맛을 느끼려면 우선 추억 속의 집안 연장들과 인사를 해야 합니다.
짚으로 만든 도구, 쇠로 만든 도구, 싸리와 대, 나무로 만든 도구가
행랑채를 중심으로 집안 곳곳에 덩그머니 버티고 있어야...
그래야 고향에 온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행랑채는 곧 마음속의 농업박물관...
 
 
 
방문 창호지
 


어머니는 조금 한가한 틈을 보아 방문 창호지를 다 뜯습니다.
물걸레로 대야 하나를 준비해서 때가 다 가시도록 쓱쓱 닦습니다.
꺼무튀튀했던 문도 이제 노오란 나무 본색을 드러냅니다.
 
밀가루를 훌렁훌렁 풀어 휘저어가며 풀을 쒀 두십니다.
풀을 쑤면서 해야할 일이 또 하나 있지요.
‘다우다’라는 새하얀 광목 천에 풀을 먹여 빨래줄에 한 번 걸어 둡니다.
어느 정도 말라 풀이 먹었다 싶으면 먼저 창호지를 바르고
그 위에 천을 바릅니다.
 
마지막으로 문풍지를 바르면 문 여닫을 때도 별 문제 없었지요.
그렇게 하면 대한(大寒), 소한(小寒) 추위도 끄덕 없었습니다
 
 
 
장독뚜껑
 
시골 날씨는 기상청에서 발표한 것보다 3-4도는 낮습니다.
 
간장이나 된장 등 짠 것은 얼 일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동치미 독과 배추 김칫독은 마람을 엮어 둘러씌우는 데도 짚이 쓰이고
뚜껑도 짚으로 이쁘게 만들어 덮었습니다.
 
 
 
무 구덩이 보온
 
무 구덩이는 얼지 않을 땅까지 파내고 가에 짚을 둘러
흙에 직접 닿지 않게 하고 무를 상하지 않게 차곡차곡 쌓은 다음
짚을 오므리고 나무 작대기를 꽂아 지붕을 만들고 흙을 덮습니다.
 
흙이 두텁게 쌓이면 그 위에 큰 짚다발 하나를 꽁지를 단단히 묶고
눈이 쌓여도 안으로 스며들지 않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착착 마무리 묶음을 합니다.
 
‘우지뱅이’가 다 되었으면 가랭이를 쫙 펴서 올려놓으면
무에 바람이 들어 갈 염려도 없고 냉기가 들어 찰 까닭도 없이
경칩 때도 싱싱한 무를 보관해두고 먹었습니다.
 
 
 
멍  석
 
멍석 하나 있으면 시골에선 짱입니다.
윷놀이 때, 추어탕 먹을 때, 대사치를 때, 멍석말이 할 때
긴요하게 쓰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레드카펫보다도 더 고급이였고 유용했습니다.
 
 
 
옹기종기 장독대
 
한 집안의 장맛을 보면 그 집의 음식 솜씨를 알고,
장맛은 그집의 여자들 손끝과 장독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복조리 한 쌍
 
이제 복조리 장사는 대부분 사라진 것 같습니다만...
연세가 많아 자연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으시고
복조리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쌀은 정미과정에서 일 필요도 없이 좋은 세상이 왔지요.


 
 
똥장군을 올려 놓은 지게
 
“아부지, 제 지게 언제 맹그라 줄라요?”
“형 것은 작년에 만들어 주셔놓고 왜 그러시요?” 하며
다부지게 여쭙고 따졌지요.
“글고라우 옆집 아그들도 다 만들었다구만이라우~”
 
그런데도 아버지께선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해 가을이 되고 해가 바뀔 즈음이자 한글을 깨우칠 무렵
아버지께 또 몇 번이고 졸랐더니,
“알았다, 우리 아들 말도 잘 듣고 부지런한께
이쁜 지게 하나 맨들어 줘야제. 아부지가 나무를 봐 뒀다.
소나무를 벼다가 잘 말려야 헌께 쬐까 시간이 걸릴 건게 그리 알거라.”
“예, 아부지..."
 
 
 
옛 부엌의 모습
 
깊은 산속에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이면 아버지는 저녘에
굵은 장작을 넣고 군불을 때셨습니다.
그래도 아침이 다가 오면서 구들장이 식어 추워서
새벽녘엔 새우잠을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이른 아침에 소죽을 끓이시느라고 다시 불을 짚혀 방바닥이
따듯해 오면 다시 잠이들어 일어나가가 싫었지요.
 
 
 
 
 
 
하늘이 내린 천(川)
 
그야말로 저기에 저 개울물은 우리들의 생명이였지요.
먹고, 밥도 짖고, 빨래도 하고, 소죽을 끓일때도 사용하고
여름에 목욕도 하고...
 
 
 
시골집 가보 1호
 
 봄철에 농사일부터 가을에 곡식을 타작하여
마차에 짐을 싣고 정미소까지 벼를 열댓여섯 가마씩 나르고,
작은 생활비는 한줌의 팥과 콩, 깨, 그리고 약초뿌리와
나물판 돈으로 충당을 했지만 큰 돈들어 갈때는
가보 1호인 저 소를 팔아 쓰고 다시 송아지를 사다가
기른 곤 했지요.
 


 
측간과 퇴비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의 화장실입니다.
나무를 땐 재를 측간에 퍼더 놓고 볼일을 본 다음에
재로 덮어서 뒷쪽으로 밀어 쌓아 두었지요.
나중에 이 것으로 비료를 대용했습니다.
 
 
 
 
▲ 쇠죽을 쑤던 솥단지
 
 
 
 
▲ 짚 삼태기
 
주로 퇴비나 식은 재를 담았던 도구
 
 
 
 
▲ 닭의 안전가옥 엇가리
 
병아리와 닭이 살쾡이와 족제비, 고양이등 야생동물들로 부터
안전을 보호 받는 보금자리입니다.
 
 
 
 
▲ 둥구미
 
주로 곡식을 담는데 사용
 
 
 
 
▲ 닭 둥우리
 
닭이 알을 낳고 알을 품는 둥지죠.
알을 품기 시작한지 3주쯤 지나면 바람에 날릴 것 같은 이쁜털을 갖고
'삐약삐약' 병아리가 날개짓을 합니다
 


 
▲ 소 꼴을 담는 망태
 
꼴이란 소 먹이를 말합니다.
산이나 들에서 나는 풀중에 소가 좋아하는 풀을 골라서
베어 담아 오는 망태라고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 멍석과 채반
 
채반은 주로 나물이나 호박고자리를 말리거나
고추를 말리는데 사용했습니다.
 
 
 
 
▲ 똥장군
 
이거 지고가다 엎어지면 어찌 되는 줄 아시죠?
지고 갈때 내용물이 출렁거려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서
가끔 엎어지고 흘러 나오는 경우가 있었지요.
 
 
 
 
▲ 절구와 절구대
 
마른 곡식을 찧는데 썼던 도구입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도구통, 도굿대라고 불렀습니다.
 
 
 
 
 
▲ 곰방대
 
할아버지께서 담뱃대에 봉초(우리땐 풍년초라고 불렀습니다)를
꼬깃꼬깃 넣고 부싯돌로 불을 붙혀 뻐끔뻐끔 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 화  로
 
시골에서 유일하던 실내 난방기구였지요.
꺼진 것 같던 불도 헤집어 보면 살아있고...
적사(적쇠)에 고구마를 납작하게 잘라 올려 놓아 구워 먹기도 하고
밤을 구워서 먹기도 했습니다.
 
 
 
▲ 쇠스랑
 
외양간에서 소가 싼 똥(두염)을 퍼 내거나
퇴비를 높밭에 퍼다가 넓게 펴는데 주로 사용을 했던 농기구입니다.
 
 
 

▲ 되와 말, 함지박
 
 
사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고 했고
파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깎아 배려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고 했지요.
 
 
 
 
 
그밖에 외양간 근처에는 무쇠로 만든 작두가 있습니다.
쇠붙이로 만든 게 이뿐만은 아닙니다.
낫, 괭이, 호미, 곡괭이, 약괭이, 톱, 꺽쇠, 창등...

 

예전에 농가에 가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아주 흔한 농기구 들인데 요즘은 보기조치 힘든 물건들이

하나 둘씩 늘어 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 싸리나무로 만든 삼태기

 

 

 

 

▲ 뒤 

 

좀 산다고 하는 집에서는 저런 짚으로 만든 뒤주가 아니라

목재로 가구처럼 짜서 사용을 했습니다.

 

 

 

 

▲ 석  작

 

 

목재 농기구에 대해서도 잠시 알아 보겠습니다.

예전엔 싸리나무도 중요한 농기구 원료로 한 몫을 했습니다.

삼태기가 있고, 채반이 있으며, 발채도 있었지요.

탈곡을 하는 데 사용했던 도리깨도 나무로 한 자리 차지했는데

중부지방에서는 주로 물푸레 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었지만

남부지방에서는 대나무가 많이 쓰였습니다.

대로 만든 엇가리는 닭장에 놓여 있고 발채, 소쿠리, 바구니, 석작은

정지나 광에 보관을 했으며 '챙이'라 했던 키도 있습니다.

 

 
▲ 쟁 기
 
논과 밭을 가는데 사용을 했습니다.
 
 
 
 
 
▲ 용마람
 
초가지붕의 맨 윗부분을 덮어 주기 위해
볏잎으로 짰습니다.
 
 
 
 
▲ 금 줄
 
소중한 한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왼 손 새끼줄( 보통 일반 새끼줄은 오른쪽으로 꼬았음)을 꼬아서
만들었으며 아들이 태어나면 고추를 매달아 놨습니다.
 
 
 
 
 
 
▲ 제 웅
 
주로 벽짚을 이용해서 만들었으며
일반적으로 고사 지낼 때 사용하거나 "액막이"용으로
사용을 했습니다.
 
 
 
▲ 고 침
 
지금으로 말하면 벼개나 목침 정도로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 씨앗병
 
다음해 농사에 사용할 각종 씨앗을 보관하는 용기로
사용됐는데, 적당하게 통풍도 되고 습기도
조절을 해 주고 해서 어떤 과학적인 용기보다도 훌륭했습니다.
 
 
 
▲ 달걀망태
 
 
 
 
▲ 짚모자
 
밀짚모자는 돈을 주고 사야하기 때문에
집에서 이렇게 만들어 쓰고 비 올때나 햇볕이 강할때
쓰고 다녔습니다.
 
 
 
 
▲ 짚 신
 
 
 
 
▲ 석  작
 
 
 
▲ 죽부인
 
 
 
 
▲ 키
 
곡식의 먼지나 돌을 골라 낼때 주로 사용을 했지만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싸면 아침에 키를 쓰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라고 할때도 사용했습니다.
 
소금을 얻으러 가면 이웃집 아주머니가 소금을 뿌리면서
키를 쓰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몽둥이 때렸습니다.
 
오줌싸게를 예방하는 전해오는 민간 요법이라고 하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지수1250 저도 몇번 이 키를 쓰고 이웃집으로
소금을 얻으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ㅋㅋㅋ
 
 
 
여기 사진에 소개 된 것 말고도 우리의 전통 농기구및
옛기구들이 더 많겠지요. 다만 아쉬운 것은
용도는 고사하고 이제는 이름조차 잘 기억이 안 나는 것들
많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보존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초가삼간 - 최정자
 
 
실버들 늘어진 언덕위에 집을짖고
정든님과 둘이살짝 살아가는 초가삼간
 
세상살이 무정해도 비바람 몰아쳐도 정이든 내고향
초가삼간 오막살이 떠날 수 없네.
 
시냇물 흐르면 님의 옷을 빨아 널고
나물캐어 밥을짓는 정다워라 초가삼간
 
밤이되면 오손도손 호롱불 밝혀놓고 살아온 내고향
초가삼간 오막살이 떠날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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